매니저 출신, 한기범을 만나 다른 인생
농구를 매개로 서로 이해하고 성장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야자(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누가 이걸 돌려보더라고요. 그때 처음 봤어요. 그 책을 만나는 야자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웃음)”
‘주간 소년 챔프’에 연재됐던 슬램덩크 얘기다. 이형주 교수는 일주일 간격으로 나오는 슬램덩크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인생의 정석이라는 수학책, 성문 영어가 전부”였던 “제법 공부도 잘하는 고등학생의 삶”에 큰 변곡점이 생긴 것이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6월호에 게재됐습니다.
▲ 수학 정석, 성문 영어 대신 슬램덩크
농구를 못하는 고등학생 이형주는 천덕꾸러기였다. 점심시간에 농구할 때도 함께 뛰자고 손을 내미는 친구가 없었다. 농구를 잘하는 친구에게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형들에게도 배웠다.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다. 많은 시간을 농구에 할애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뎠다. 그래도 농구 실력은 꾸준히 늘었다. 동네에서 압도적으로 잘하는 형들이 있었다. 팀 이름이 ‘시카고 불스’였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런데 결국 이겼다. 이 교수가 스무 살이 되던 해다. “그 형들을 이기는 데 3년이 걸렸다”라며 웃는 이 교수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이 교수의 삶에는 장난기가 없다. 그때도 그랬다. 경기에 질 때마다 스스로 머리를 밀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키에 인턴으로 들어갔는데 선배들이 이직을 많이 했어요. 돈이 안 되니까요. 고민이 많아 탤런트 김승수 씨와 얘기를 많이 했죠. 그러면서 저한테는 매니지먼트가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SM 면접을 봤는데 그날 바로 채용이 됐어요.”
종목은 다르지만, SM엔터테인먼트 입사도 체육의 덕을 봤다. 마라톤 완주 경험을 얘기한 후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첫 완주의 경험이다. 절반은 뛰고 절반은 다리를 끌면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것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비추어졌을 터. 마라톤은 그에게 다른 것도 선물했다. 사람이다. 같이 다리 끌면서 갔던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가 됐다. 다음 대회는 5시간 안에 들어가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올림픽공원에 모여서 연습했다. 목표를 달성했다. 관계 맺기는 체육대학에서 만들었던 인사성도 큰 역할을 했다. 큰 소리로, 밝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연예계에서도 인맥을 넓혀나갔다. 그 인맥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중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만났다. 중앙대와 기아자동차에서 고공 농구 시대를 열었던 레전드 센터 한기범 씨와의 만남이다. 연예계에도 농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다. 마음이 통했던 개그맨 임혁필과 함께 개그콘서트 농구팀 “더홀”을 만들었다. 농구를 못 한다는 의미인, 개그맨다운 작명이다. 한기범 씨가 종종 와서 농구를 알려줬다. 이런 한기범 씨를 이 교수는 “농구의 첫 스승”으로 표현했다. 그러다 스승이 심장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담당 의사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 두 번 세 번 수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완치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수술실에) 들어간 것처럼 되게 눈물이 났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연예계는 소위 ‘노예계약’으로 불렸던 불공정 계약 관행이 많았다. 연예인을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했다. 한기범 씨의 심장병이 이 교수에게는 삶과 사람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 아버지가 들어간 것처럼 눈물이 났다
이번에도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졌다. 다니던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도 계기가 됐다. 월급도 받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퇴사 후 머리도 식힐 겸 일본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세계를 봤다. ‘앤드원’이라는 행사에서 본 농구 묘기에 매료됐다. 일본에서 봤던 농구 묘기를 직접 하고 싶어서 농구인들을 찾았다. 프리스타일 팀을 만들었다. Mnet와 함께 방송도 만들었다. 당시 유행하던 ‘스쿨어택’ 방송에서 모티브를 얻은‘러브스쿨투어’다. 그러나 과정에서 상처도 있었다.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팀원들의 내분이 생겼다. 출연료 관련 갈등도 있었다. 더 이상 신세계가 아니었다. 실망이고 시련이었다. 매니저 시절에 느꼈던 고민, 프리스타일 팀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받았던 상처. 그것을 치유한 것은 다시 ‘한기범’이었다.
“한기범 농구 교실로 다시 농구와 인연이 이어졌죠. (한기범 희망나눔) 회장님이 농구 교실을 직접 해보라고 권하셨어요. 농구 교실을 운영하면서 농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고, 한기범 회장님과 함께 농구를 가르치고 나누는 일을 통해 제 마음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한기범은 중앙대, 기아자동차 왕조의 창업 공신이다. 잘 달리고 손끝 감각도 예민한 205센티의 장신은 김유택과 함께 한국 농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은퇴 후에도 방송인과 사업가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순탄하기만 한 인생이 있으랴. 사업에서 먼저 시련이 왔다. 매출은 많은데 수익이 적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그것들이 실패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됐다. 그런데 설상가상, 건강에 더 큰 시련이 왔다. 대동맥이 조금씩 커지다 풍선처럼 터져 죽는 희귀병에 걸린 것이다. 아버지와 동생의 생명을 앗아간 병이다. 두 번의 대수술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고, 비영리 단체인 한기범희망나눔 재단을 만들어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심장병 어린이 환자와 다문화 어린이, 농구 꿈나무들을 돕기 위한 ‘2011 희망농구 올스타전’을 준비했다. 문경은, 김영만, 전희철 등 농구대잔치의 주역들이 대거 참여했다. 나만을 위한 삶에서 만인을 위한 삶으로의 전환이다.
이 교수는 그 시작부터 함께 했다.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매니지먼트를 택했던, 그러나 사람을 상품처럼 생각하는 자신을 보면서 방황했던, 첫눈에 반해서 시작했던 프리스타일 팀의 내분을 보면서 상처를 받았던 그에게 농구라는 특효약이 처방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으로 인생의 좌표를 바꿨다. 이런 과정을 거쳐 슬램덩크를 좋아했던 고등학생은 대학에서 농구를 가르치고 있다. 농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겪었던 희로애락, 그것을 통한 성장과 어울림의 과정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스포츠의 매력이다. 함께 흘린 땀은 때로 백 마디의 말보다 소중하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관계의 단절을 경험한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더 그렇다.
▲ 함께 흘린 땀은 백 마디의 말보다 소중하다
단장님, 코치님, 선생님, 교수님 등 호칭이 많았다. 이 교수는 “그전까지는 다양한 역할을 해온 탤런트 같았죠. 이제야 외부적으로도 진짜 ‘교수님’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라고 얘기한다. “2023년부터 홍익대, 가천대, 인천대에서 강의하며 본격적으로 ‘농구 교수’의 길을 걷고 있어요.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가 석사와 박사 과정에 도전할 용기를 줬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주인공 ‘사야카’는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것이 인생 최고의 낙이다. 어릴 때 왕따를 당해 공부와 담을 쌓은 그녀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즈음엔 성적이 최하위권의 학생이었다. 그런데 한 선생님을 만나 명문대 진학의 꿈을 키운다. “다른 사람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츠보타 선생님의 한마디가 사야카를 변화시켰다. 그 말은 과거 ‘앤드원’에서 봤던 농구 묘기만큼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기존에 했던 많은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체육지도전문가에 ‘농구 교수’라는 이름만 하나 더 얹었다.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미래를 위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함께 성장해 가는 교육자”의 꿈을 더했다.
‘농구 교수’ 이형주는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논문으로 정리하고 있다. ‘리듬운동을 활용한 농구 드리블 트레이닝의 효과’, ‘농구 경기에서 발생한 에어볼 슛이 경기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적 연구’, ‘스포츠 아이템이 선수들의 자신감에 미치는 영향‘, ’전신 진동운동이 성인 농구 동호회 선수의 민첩성과 방향 전환 능력에 미치는 영향‘ 등 연구 분야도 다양하다. 효과적인 농구 지도 방식을 고민하다 보니 특허도 17개나 된다. 자격증은 18개다. 교수가 되기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각형 농구공, ’쿼드볼‘도 그중 하나다. 슈팅 핸드(슛을 던지는 손)과 가이드 핸드(슛을 던지지 않는 손)의 위치를 알려줘도 경기 중에 그것을 정확하게 지키기 힘들다. 쿼드볼은 가이드 핸드의 불필요한 개입을 줄이기 위해 만들었다. 슈팅 핸드의 정렬이 흐트러지는 문제도 교정할 수 있다.
수업 방식도 새롭다. 홍익대학교는 국내 종합대학 최초로 여자농구 과목을 개설했다. 수업을 맡은 이 교수는 ’특별한 농구 리그‘를 만들었다. 자신을 농구로 이끌었던 만화 『슬램덩크』의 ‘북산’, ‘능남’, ‘해남’, ‘산왕’ 등으로 팀을 구성한 것. 농구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직접 경기 기록지를 작성하고 작전을 구상하며 팀을 운영하는 등 모든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스포츠 교육의 핵심”이라는 이 교수의 지도 철학을 실험했다. “이번 리그는 리더십,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라고 이 교수는 평가했다. 리그 결승전이 열린 날, 서울여중과 연습경기도 있었다. 실전이 가장 좋은 훈련이라는 말이 있다. 실전을 통해 훈련 중에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확인한다. 이 교수는 “농구를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뜻깊은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함께’와 ‘어울림’의 가치를 배운다는 것이다. 그것을 농구 수업이, 아닌 농구 학과를 통해 넓히고 싶다. “축구 학과, 야구 학과는 있는데 왜 농구 학과는 없죠?”라고 묻는 이유다.
▲ 왜 농구 학과는 없죠?
‘성장’은 이 교수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다. 한기범 회장을 만나 ‘나눔’을 배웠다. 대학에서 강의도 그 연장선에 있다. 평범한 학생에게도 도움의 손길은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 시기 관계의 단절을 경험한 학생들은 더욱 그렇다. 이 교수는 박사 학위를 준비할 때 코로나를 겪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교수실을 찾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에는 교수실을 찾는 학생이 드물다. 대면해서 관계 맺기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간다. 본인의 SNS 주소를 알려준다. SNS를 통해 소통한다. 그러다 보면 대면에서 얘기하는 것도 덜 어색하다. 그렇게 학생들과 가까워지는 것이 반갑다.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이 즐겁다.
“한 학기에 제가 가르치는 학생이 200명 정도 됩니다. 학기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아이들이 달라지는 걸 느낍니다. 1년이면 400명, 10년이면 4000명이 되잖아요. 전 그 학생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고 생각해요. 소소하지만 농구의 파이도 키우고 있죠. 제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체육관을 한 번 더 가고 농구화를 하나 더 사면 시장이 커집니다. 이 학생의 아이가 농구를 할 수도 있죠. 그런 생각을 하면 행복합니다.”
코로나 시기에 학생들만 변한 것이 아니다. 이 교수도 변했다. 농구 교실을 나간 아이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코로나 시기에 그만둔 아이들도 그랬다. 더 심각한 건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들도 없다는 점이다. “인구 소멸이라는 말이 느껴진다”라고 했다. 학령기 아동은 줄어들었고, 줄어든 아이들은 농구보다 야구나 축구를 선택한다. 그것을 위해 당장 해결해야 할 것도 있고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도 있다. 당장은 농구를 재미있게 알려주는 것, 길게는 농구의 매력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이 이 교수가 선택한 방법이다. 더 많은 학생이 농구의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그 학생들이 10년 후, 15년 후에 부모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농구를 즐기는 것이다.
이 교수는 농구의 매력을 믿는다. 그것은 농구 자체의 매력과 농구로 인한 매력이다. 농구 자체의 매력은 본인이 지금까지 빠져 있는 이유다. 팀 스포츠인 농구로 인한 매력은 코로나 이후 더 특별해졌다. 그것을 알리는 것, 그것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 이 교수의 미션이 됐다. 멀리 돌아왔다. 그러나 다른 길로 빠지지는 않았다. 오후 5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7시가 넘어서 끝났다. 꾸준하게, 거침없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농구 전도사’는 인터뷰가 끝난 늦은 시간에도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다시 신발 끈을 묶었다.
#사진_이형주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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