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현 수석코치는 2000~2001시즌 청주 SK(현 서울 SK)에서 데뷔했으며 2001~2002시즌 대구 동양(현 고양 소노)과 챔피언결정전에서 7차전을 처음 경험했다. 당시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섰지만, 6,7차전을 동양에게 내줘 아쉽게 챔피언 등극에 실패했다. SK는 당시 외국선수에 버금가는 서장훈이 버티고 있었지만, 외국선수로 존재감이 제로였던 찰스 존스 때문에 우승을 놓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재현 수석코치는 2007년 SK에서 전주 KCC(현 부산 KCC)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KCC 팬들의 미움의 대상이었다. 임재현과 서장훈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KCC와 계약한 뒤 보호선수에 포함되지 않은 이상민이 서울 삼성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08~2009시즌 6강과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5차전을 치르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첫 챔피언 등극의 꿈을 이뤘다. 2010~2011시즌에도 두 번째 챔피언 반지를 꼈다.
임재현 수석코치는 고양 오리온으로 팀을 옮긴 뒤 2015~2016시즌 중 선수에서 갑작스레 은퇴해 코치를 맡았고, 또 한 번 더 챔피언 등극의 기쁨을 누렸다.
모교인 배재고에서 팀을 이끌던 임재현 수석코치는 조상현 감독이 LG로 부임한 2022~2023시즌부터 조상현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우승 소감
나는 LG와 관계가 있는 게 아니었다. 조상현 감독님의 부름을 받고 왔다. 창단 첫 우승에 일원이 되었다는 자체가 영광스럽고, 감동스럽다.
선수 시절 7차전을 두 번 경험했다.
데뷔 2년 차일 때 7차전을 갔을 때는 패기로 한 거다. 조상현 감독도 계시고, 서장훈 선배가 주축이 되어서 큰 걱정거리 없이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하는, 정신없이 했던 7차전이었다. KCC에서는 6강부터 5차전, 5차전, 7차전을 했다. 4강에서는 얼굴 부상도 당했는데 7차전에서 우승했다. 내 나름대로 이상민 선배가 삼성으로 가면서 힘들었던 시기에 빨리 우승이 나왔다. KCC 팬들에게 비난을 받다가 그 해 우승해서 농구에 집중할 수 있었던, 너무 간절했던 우승이었다. 그 우승으로 인해 잘 풀렸다.
코치로 2번째 우승이지만, 첫 번째는 선수에서 시즌 중 은퇴 후 코치를 맡았을 때다.
(2015~2016시즌) 5라운드까지 선수 생활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코치로 결정되었다. 그 때 오리온 선수 구성이 너무 좋았다. 최진수가 군대에서 전역하고, 기존 유망주까지 있었는데 12명 출전선수 명단 구성이 고민스러워서 추일승 감독님께서 제안을 해주셨다. 내 선택이었다. 무조건 코치를 하라는 게 아니었다. 선수를 하더라도 12명에 들어가는 걸 보장을 해주셨다. 40살이었지만, 뛰는 거나 체력문제가 없었고, 젊은 선수들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그런 제안을 두고 하루 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 세븐맨이나 D리그 선수로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은퇴 후 빨리 코칭스태프 공부를 하는 것도 괜찮다 싶어서 가족과 상의 후 은퇴하고 코치로 우승을 했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코치로 첫 번째 경기가 LG 원정이었다(웃음). KTX 타고 창원으로 내려왔는데 선수대기실에서 정장을 입고 나와서 기자분들이 다 놀랐다. 그 당시 오리온에서 (창원으로) 내려올 때까지 발표하지 않고, 그 때 이벤트처럼 그렇게 해줬다. 코치를 할 때 배우는 입장이었다. 조상현 코치, 김병철 코치 옆에서 외국선수 보는 방법, 선수 구성과 훈련 방법을 유심히 지켜봤다. 막내 코치로 심부름하고,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고,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우승했다(웃음). 기분이 좋았다.
(챔피언결정전) 상대가 KCC로 기억한다. 추일승 감독님께서 따로 불러서 추승균 감독님과 KCC 선수들 성향을 세밀하게 물어보셔서 답변을 드렸다. KCC의 분위기나 선수들의 심리까지 파악해서 전술 등을 짜시려고 그랬던 거 같다. 4강까지 자리 하나 차지한 코치였는데 그렇게 도움을 주고 우승해서 너무 좋았다. 끝나고 숙소로 돌아갈 때 추일승 감독님께서, 김병철 코치, 조상현 코치도 같이 있었는데, ‘임재현 코치가 나에게 도움을 줘서 마지막 퍼즐 하나가 맞춰졌다’고 해주셔서 그게 짜릿하고 소름이 돋았다.
LG에서는 수석코치를 맡고 있고, 감독님 바로 밑이니까 내 의견이 반영이 된다. 박유진 코치, 김동우 코치, 강병현 코치 등 코치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서 감독님께 보고를 하는 편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감독님께) 바로 가는 게 아니라 코치들이 나를 거쳐줬다. 그 코치들도 나와 의견을 나누고 최종적으로 감독님과 상대팀 분석 등을 공유하는데 내가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선수들이 너무 잘 해주고 감독님도 잘 해주셨지만, 우승에 보탬이 된 나에게는 ‘기분좋은 우승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선수나 코치 때 우승보다 더 많은 참여를 하며 우승에 일조한 거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웃음).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게 ‘챔프전만 가자’였다. 챔프전을 가면 많이 힘들 거라고 예상했다. 우리가 정규리그에서 SK에게 많이 밀렸다(1승 5패). 그래도 3년 전부터 SK와 경기할 때 수비 방향을 잘 잡았다. 워니 수비 효율이 좋았고, 감독님과 내 생각도 비슷했다. 3연승을 하니까 자신감이 많이 붙고 (우승이) 될 거 같았다.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홈(4차전)에서 1승이 남았을 때 전반 끝나고 이 경기는 우리가 봐도 힘들 거 같았다. 우리는 3경기가 더 남아도 쉽게 가지 않을 거라고 여겨서 (전반을 마친 뒤 선수대기실에서) 감독님께서 뒤에 계시는데 내가 선수들에게 큰 소리를 한 번 냈다. 쇼를 한 번 한 거다. 너무 취해 있는 거 같았다. 우승을 하고 싶지만, 어린 선수들이라서 흔들리는 게 MVP다. 나는 직선적이니까 ‘MVP 받고 싶냐’고 강한 어조로 분위기를 잡았다. 긴장한 선수들은 ‘그런 거 아니다’, ‘그런 거 없다’고 했다. ‘여기까지 온 게 똘똘 뭉치고, 원팀이 되어서 서로 도우면서 끈끈하게 왔는데 이렇게 하면 7차전까지 진다’고 뼈 있게 이야기를 했다.
허일영(주장)이 이야기를 하면서 잡아줄 게 있지만, 코치들도 할 부분이 있다. 3경기를 잘 했다고 해도 한 경기 날리더라도 선수들에게 강하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는 말도 해봤다. 다 해봤다. 그 다음에 서울(5차전) 가서 또 가비지 경기였다(웃음). 그때는 ‘괜찮다’, ‘괜찮다’고 위로해줬다(웃음).
2번 지고 (6차전이 열리는) 창원으로 내려오며 ‘이건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뭘로 잡아야 하나’ 엄청 고민하고, 코치들과도 의논하고, 감독님과 상의했다. 결론은 ‘우리 걸 해야 한다’였다. 양준석이 살아야 하는데 놀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준석이가 4,5차전에서 힘이 들어서인지 좀 못 놀았다. SK에게 높이가 있고, 힘도 있는 김태훈을 (양준석의) 수비로 붙이니까 (양준석의) 패스 나가는 게 약했다.
경기를 많이 보면서 ‘똑같은 패턴을 하는데 왜 다르지’ 봤더니 찾아낸 게, 준석이 옆에 있는 (SK) 선수들이 도움수비를 했다. 4강부터 준석이가 잘 해서 경기도 잘 풀렸기 때문에 ‘준석이가 볼을 많이 가질 때 그 옆에 공간을 더 만들어야겠다’고 감독님께 보고를 드렸다. 감독님도 똑같이 느끼고 계셨다.
6차전 때 어느 정도 대등해서 괜찮다 싶어서 끝난 줄 알았다. 힘에서 밀리지 않았다. (6차전에서 패한 뒤) 감독님께 말씀을 드린 게 ‘하늘이 안 도와주네요’였다. 워니의 마지막 터프샷이 안 들어갔으면 끝났을 거다. 우리도 ‘(우승이) 힘든 거 아니냐’ 하면서 분위기가 떨어졌다. 선수들에게 격려보다 가만히 들뜨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7차전이 열리는) 서울로 올라가서 선수단 분위기가 처지지도, 흥분하지 않고 7차전을 위해 각자 생각하는 게 많아서 그렇게 준비했다.
감독님께 ‘6차전 3,4쿼터가 괜찮았고, SK도 긴장했다’는 걸 많이 말씀드렸다. SK도 4,5차전에서 손쉽게 많이 이기니까 잘 될 줄 알았을 건데 6차전 3,4쿼터에서 우리에게 밀렸다. ‘슛 던질 때 보면 긴장을 하는 거 같으니까 우리가 맨 처음 했던 수비로 가자’고 했다. 2~3가지 수비가 있었는데 다 잘 되었지만, ‘김선형이나 앙영준에게 슛을 주더라도 다시 워니를 잡자’고 했는데 감독님도 그걸 원하셨다. 그런 계획을 짜고 나가서 잘 되었다. 1차전부터 7차전까지 공격은 거의 비슷했다. 감독님께서 수비에서 변화를 준 게 잘 되었다. SK에서는 항상 핵심은 워니였다.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는 소통이 이럴 때 나오지 않았나 싶다. 선수들이 스스럼없이 코치들에게 아무 때나 전화한다. 우리도 선수들 컨디션이 떨어지면 전화해서 ‘괜찮다’고 위로도 많이 해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이번 시리즈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대화를 많이 했다. 선수들은 감독님께 잘 보이고 싶은데 안 되는 것도 있다. 감독님을 거치지 않게 하게 하려고, 신경쓰지 않도록 선수들과 힘든 거 이야기하고, 걸러낼 건 걸러내고 반영할 건 반영하고, 그게 코치들이 하는 역할이다. 선수들이 그걸 다 이겨냈다. 우승할 때 기뻐하고 간절했던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났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힘들어해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던 준석이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 몰랐다. 이번 시즌은 준석이가 잘 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준석이가 픽게임을 많이 하니까 ‘현대모비스와 경기를 하면 픽디펜스 방향이 이러니까 이렇게 공격을 했으면 좋겠다’, ‘한국가스공사와 할 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각 팀마다 많이 보고 분석해서 준석이에게 경기 중에도 이야기를 많이 한다. 수비가 바뀌면 ‘이런 수비니까 짧게 하라’, ‘빠른 볼처리를 하라’, ‘길게 들어가라’ 등 수시로 소통을 했다. 감독님도 계시지만, 한 번씩 벤치에서 패턴 어느 쪽으로 갈지 ‘지금은 마레이 포스트업이 낫겠다’, ‘기상이가 던지는 걸로 한 번 가자’ 등 의논도 많이 했다. 감독님께서 워낙 많은 걸 하고 계시니까 그런 걸로 도움을 드려야 한다.
준석이에게 신뢰가 많이 갔다. 준석이는 자기보다 더 좋은 기회면 패스를 준다. 그렇기 때문에 준석이가 볼을 오래 가지고 있어도 (다른 선수들도) 언제 줄지 모르니까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까 양준석의 농구가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리듬을 가지고 하는 게 제일 무섭다고 강조한다. 너무 잘 해줘서 너무 고맙다. 언젠가는 될 줄 알았는데 빨리 왔다(웃음). 준석이는 안정적인 드리블이 좋다. 스피드가 조금 부족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왔다. 자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해온 게 많다. 사람들이나 팬들이 ‘웨이트가 약한 게 아니냐’, ‘느려서 어떻게 해’ 이렇게 평가하지만, 올해는 양준석 농구에 빠졌다(웃음).
고등학교 코치를 3년 해서 대학과 고등학교 선수들을 많이 봤다. 그 때부터 (양준석이) 참 좋았다. 어느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는 걸 가지고 있다. 이상민, 신기성, 주희정, 김승현 등이 있고, 요즘은 허훈, 김선형, 변준형 이런 내놓으라는 가드들이 있지만, 그 이상이다. 양준석을 봤을 때 이상하게 자신만의 농구가 있다. 그런 농구를 하는 선수인데 이재도처럼 득점하게 만들었기에 우리가 잘못된 거였다. 감독님께서 준석이를 기다려주고, 준석이가 놀 수 있게 만들어줘서 그걸 잘 하지 않았나 싶다.
과장되게 말하면 나와도 부딪혔다. 무조건 감독님 말씀이 맞는 게 아니다. 이런 것도 있다고 하고, 나도 안 통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그럼 그걸 반영해 주셨다. 코치들도 훈련할 때 다 참여하게 만들고, 우리도 중간에 끼어들고, 그러니까 우리도 영상을 보면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취지에서 정말 감사한 감독님이다. 감독님을 보고 본받게 되고, 존경스러운 감독 생활을 하고 계신다. 너무 감사하다.
예전이라면 (코치들은 훈련할 때) 코너에 서 있다가 감독님께서 다 하시고 끝나는데 우리 팀은 그런 게 없다. 원칙에서 어긋나면 스태프에게도 화를 내고, 혼을 낸다. 나와 한 살 차이인데 나도 혼난다(웃음). 고등학교 때부터 30년 가까이 봐와서 성격이나 성향을 알아서 이런 쪽으로 갈 거 같으면 미리 선수를 친다. 분위기가 안 좋은 거 같으면 선수들을 미리 혼낸다. 감독님과 이런 게 많이 잘 맞았다. 또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할 때 혼나더라도 이야기를 다 했다(웃음). 감독님께서 그런 걸 다 받아주셨다. 솔직히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감독님 모시기 어렵다. LG에게 감독님과 3년을 하고 있는데 예전과 다른 모습도 나온다.
조상현 감독님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도와주고 싶은 코치 중 한 명이다. ‘어려운 시기에 (LG를) 맡았다며 같이 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다(웃음). ‘LG가 성적이 안 좋았는데 금방 잘리는 거 아니냐. 고등학교에서 정년까지 편하게 코치로 있을래요’라고 했었다(웃음). 바로 욕부터 하면서 ‘짐 싸서 오라’고 하셨다. 조상현 감독님께서 잘 되도록 도와주자는 마음가짐으로 LG에 합류했다. 아까 말씀을 드린 것처럼 LG와 연이 있는 게 아니고, 조상현 감독 한 명을 바라보고 (LG 코치로) 왔다.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수고를 많이 하셨는데 그걸 우승까지 만들어 주셔서 내가 감사하다.
김준성 코치와도 소통을 하고 있다. 배재고가 스타 선수가 거의 없다. 내가 배재고를 맡았을 때 전국 꼴찌였다. 1년에 1승을 할까 말까 하는 팀이었다. 코로나 때 대회를 못 나간 이후 2승, 3승을 하니까 학부모님들께서 우셨다. ‘매번 20점, 30점씩 졌는데 감독님(임재현 코치)께서 오시니까 달라졌다’고 해서 ‘연습경기인데 왜 그러냐’고 달랬다.
나도 지도자의 뿌리가 추일승 감독님이다. 조상현 감독님도 나와 비슷한 시스템을 가지고 훈련을 가르쳤다. 우리가 공부하다가 좋은 게 있으면 우리 걸로 만들었다. 그런 자산을 가지고 고등학교로 갔다. 꼴찌니까 더 내려갈 곳이 없어서 재미있게, 즐겁게 프로에서 하는 걸 많이 알려주고, 용어도 사용하니까 선수들도 집중력이 생겼다.
(배재고 코치 부임) 2년 만에 16강을 갔다. 6~7년 만에 진출이라고 하더라. 그거 되게 쉽다. 대진표만 잘 뽑으면 그냥 가는데 그것도 안 되었던 게 배재고였다. 그렇게 1승, 2승이 아니라 10승 이상을 했다. 그 다음에는 8강을 갔다. 선수들이 대학을 잘 갈 수 있도록, 대학 원서를 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줬다. 배우고 싶다고 오는 전학생도 있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야간 훈련을 한 번도 안 빠지고 봤다. 그 정도 열정을 가지고 했다. 거기서 많은 걸 배웠다. 너무 잘 하고 있는 김준성 코치와 소통을 하는데 배재고가 잘 되었으면 한다(웃음). 배재고에 있었던 그 3년이 큰 자신이다.
휴가는 어떻게 보낼 건가?
다음 주 대회에 나갈 준비를 한다. 나는 감독님께서 언제 부르실지 모르니까 대기한다. 하루 일상은 첫 째, 둘 째 아들 학교 보내주고, 끝나면 학원을 보내준다. 점심 때는 산에도 가고, 좋아하는 골프 연습장도 가고, 낮에는 쉬면서 하고 싶었던 거 한다. 아침 저녁이 바쁘다(웃음).
#사진_ 점프볼 DB(문복주,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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