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용인/유석주 인터넷기자] 아산 우리은행은 31일 용인체육관에서 열린 용인 삼성생명과의 2024~2025 하나은행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맞대결에서 73-61로 승리했다.
김단비가 지난 맞대결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낸 경기였다. 지난 1월 4일 삼성생명을 상대한 김단비는 경기 내내 빡빡한 수비 전술에 막히며 12점을 넣는 데 그쳤다. 시즌 평균 득점인 21.4점에 훨씬 못 미치는 기록이었고, 야투율 역시 36%로 좋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 김단비는 180도 달라진 경기력을 선보였다. 전반전에만 21점 6어시스트를 기록, 무자비한 득점 생산력으로 삼성생명을 압도했다. 우리은행 역시 2쿼터까지 51-37로 넉넉한 리드를 챙겼고, 이후에도 별다른 위기 없이 무난히 승리하며 부산 BNK 썸과 함께 리그 공동 1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과연 김단비를 다르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탑이 아닌 45도, 그곳이 곧 김단비의 시작점
이날 김단비는 하프코트 오펜스의 대부분을 45도 구역에서 시작했다. 평소에도 윙에서 자주 공격하던 김단비지만, 이날은 그 비중을 크게 늘렸다. 지난 맞대결 때 삼성생명의 수비를 고려한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의 전략이었다.
당시 삼성생명은 김단비의 동선을 극단적으로 틀어막는 수비 대형을 사용했다. 탑에서 김단비가 공을 들고 있으면 좌우에 있는 선수들은 손질과 트랩을 위해 공간을 조였다. 핸들러가 탑에 있으면 활용 공간이 늘어나지만, 반대로 따라붙는 수비수도 많아진다. 지난 맞대결에서 해당 수비에 고전한 김단비는 무리한 돌파를 감행하다 실책을 범하는가 하면, 수비수를 달고 터프한 미드레인지를 자주 던졌다. 슛 감이 좋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이날 김단비는 2쿼터까지 무득점에 그치며 깨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위성우 감독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김단비의 공격은 믿는다. 그날 (김단비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건 맞지만, 김단비를 위한 세팅이 문제였을 뿐이다”라며 사전 인터뷰를 마친 위성우 감독은 에이스를 향한 굳은 신뢰를 보여줬다. 그리고 증명했다.
‘김단비 45도’ 작전을 실행한 우리은행은, 공을 쥔 선수가 서 있는 반대 방향인 ‘위크 사이드’에 나머지 선수들을 배치하며 김단비가 1대1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넓혔다. 그렇게 공격의 전권을 쥔 김단비는 1쿼터부터 맹활약하며 팀의 기대에 부응했고, 삼성생명은 지난 맞대결과 달라진 김단비의 위치와 득점력에 당황하며 경기를 끌려갔다.
‘상대와의 밀당’ 원 드리블 어시스트
이날 김단비의 공격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김단비가 경기 내내 드라이브나 슈팅만을 고집했다면, 삼성생명은 다시 코트를 좁혀 김단비의 동선을 제한했을 것이다. 실제로 2쿼터부터 삼성생명은 김단비를 막기 위해 다시 한번 코트를 좁히는 시도를 가져갔다. 에이스의 선택은? 간단했다. 빠른 공 처리로 다른 선수들에게 어시스트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날 김단비가 기록한 6개의 어시스트 중, 무려 3개가 원 드리블 후 동료에게 전달하는 패스였다. 공을 오래 들고 있으면 곧바로 압박해오고, 공을 받자마자 뿌리면 수비를 몰리게 할 수 없으니, 원 드리블로 상대가 반응하는 찰나에 공을 건네서 다른 선수들이 득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는 선수 개인의 어시스트 그 이상의 효과를 거뒀다. 이후 삼성생명은 김단비가 공을 잡고 드리블을 쳐도 섣부른 압박을 시도할 수 없었고, 상대와 ‘밀고 당기기’에 성공한 김단비는 한결 여유롭게 공격에 나서며 꾸준한 득점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거기에 프로 통산 2000개의 어시스트를 달성하는 명예까지 얻었다.
‘에이스 헌팅은 없다’ 우리은행의 성실한 방패 이명관
하지만, 이날 경기 최고의 활약을 펼친 김단비보다 더 오랜 시간 코트를 밟은 선수가 있다. 바로 40분 중 38분을 소화한 이명관이다. 김단비가 우리은행의 빛나는 창이었다면, 이명관은 성실하고 든든한 방패였다. 173cm의 신장이지만 우직한 힘과 빠른 발을 지닌 이명관은, 공격에선 ‘김단비의 온 볼 & 3점 슈터들의 오프 볼 스크리너’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본인은 단 5점에 야투율 22%로 고전했지만, 코트 곳곳을 뛰어다니며 든든한 벽을 세운 뒤 동료들의 편한 슈팅을 만들어줬다. 수비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삼성생명은 스크린 후 스위치를 통해 김단비에게 신장이 큰 배혜윤을 붙이고자 했다. 김단비의 수비 부담을 늘려 공격에서 쓸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명관은 한발 빠른 수비로 스위치에 대응하며 삼성생명의 ‘김단비 헌팅’을 허락하지 않았고, 체력을 아낀 김단비는 더욱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만약 이명관이 없었다면, 김단비의 설욕전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WKBL 리그 레이스. 치열한 순위 경쟁 속 김단비의 폭발과 함께 4연승을 챙긴 우리은행은 한 뼘 더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오는 3일 인천 신한은행을 상대로, ‘공동 1위’ 우리은행은 선두 자리 굳히기에 나선다.
#사진=김소희 인터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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