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SK와의 원정경기에서 75-80으로 패한 수원 KT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옷만 갈아 입고 구단 버스에 올라탔다. 씻지 않고.
이 글만 보고 다들 ‘경기를 뛴 선수들이 씻지도 않는다고?’라고 반응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잠실학생체육관에는 원정팀 샤워 시설이 없다. 라커룸이라고 해봐야 선수들이 옷을 갈아입고 앉을 수 있는 공간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경기 후 선수들은 간단하게 수건으로 땀만 닦아 내고 옷 갈아입은 채 구단 숙소, 또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씻는다.
삼성의 홈구장인 잠실체육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원정 라커룸에 샤워 시설이 있긴 하지만 샤워기가 단 3개뿐인데다 화장실 소변기가 바로 맞은 편에 있으니 10명이 넘는 선수들이 샤워를 하기는 어렵다. 삼성과의 경기 후에도 원정팀 선수들은 숙소로 돌아가서 씻는다.
이동거리 1시간 내 구단 숙소 이동은 그래도 좀 낫다. 서울 경기 직후 지방으로 이동할때가 문제다. 샤워를 하지 않은 채 5~6시간을 버스로 이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때는 신천동에 있는 대중목욕탕에서 단체로 씻는다. 간혹 신천동 대로변에 농구단 버스가 시동을 건 채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목욕탕에 간 선수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나마 LG는 같은 스포츠단 야구팀 LG트윈스의 협조로 잠실야구장 샤워장을 쓸 수 있어서 좀 낫다. 2025년 서울 프로농구 경기장의 현실이다.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프로농구 출범 후 20년이 넘도록 서울 경기 시 원정팀은 씻지 못했다.
‘잠실 스포츠·마이스 복합사업개발’ 정책에 따라 서울시가 1~2년내에 잠실체육관과 학생체육관을 모두 허무는 상황에 ‘이제와서 뒤늦게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할 수 있겠다.
단순히 새 농구장에 원정팀 샤워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새 농구장은 좀 제대로 짓자는 뜻이다. 서울시는 야구장에만 관심이 있다. 농구는 찬밥이다.
새 경기장을 짓는 과정에서도 농구에는 무관심이다. 새 야구장을 짓는 동안 LG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홈으로 사용할 주경기장은 서울시 예산으로 한창 개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 농구장에 대한 언급은 없다. 서울시-SK-삼성이 지난해 9월 회의를 해 고려대 화정체육관, 한양대 88체육관 중 한 곳을 두 구단의 홈경기 대체 장소로 정했지만 거기까지다.
화정체육관이든 88체육관이든 프로농구 홈경기를 위해서는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하다. 야구장과 달리 서울시는 대체 농구장 예산 얘기가 없다. 서울시의 계획 때문에 홈구장을 잃었는데 SK와 삼성이 기업의 돈으로 보수를 해야 하는 처지다. KBL도 별 관심이 없다. 프로야구는 KBO리그 허구연 총재가 나서서 여론 몰이를 하고 좋은 야구장을 짓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기스포츠인 야구는 여론의 관심이 몰리니 서울시는 오로지 야구장만 신경 쓸 뿐이다. 대체 농구장에 대한 서울시의 태도를 보면 새 농구장도 어떻게 지을지 뻔히 보인다. 여론은 물론이고 연맹조차 관심 없는 새 농구장은 서울시에게 그냥 시공사가 내놓은 설계도면 대로 지으면 되는 건물일 뿐이다.
한 관계자는 “작년 말 서울시가 국내 체육관 전문 설계 업체와 만났는데, 설계 비용을 듣고는 바로 물러났다. 새 농구장도 수원(KT소닉붐아레나), 고양(소노아레나)처럼 그냥 기본 체육관 설계도처럼 지어지지 않겠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시에게 농구팀, 농구팬들은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사진=문복주 기자
오카나와아레나사진=B.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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