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홍성한 기자] 2024년 12월 2일. 김정은(37, 179cm)이 정선민(8140점)을 넘어 WKBL 통산 득점 1위에 자리했다. 그러나 표정은 담담했다. 기록보다 앞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할 후배들 생각이 먼저였다. 김정은의 “나 때는 말이야…” WKBL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됐으며, 인터뷰는 1월 13일에 진행됐습니다.
WKBL 통산 최다 득점자가 된 소감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지나간 일인 것 같다(웃음). 사실 오랫동안 목표했던 일이다. 언론에도 많이 이야기했지만, 상상 이상의 부상이 너무 많아서 깨지 못하고 은퇴할 줄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이룬 점은 나 스스로 되게 칭찬해 주고 싶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이미 지나간 일이다. 지금 머릿속에는 온통 팀 생각밖에 없다.
득점에 성공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그 순간에 뭐 떠오르고 이런 건 없었다. 그냥 어 깼네? 이 정도였다(웃음). 득점하고 경기가 잠시 멈췄다. 중지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혹시라도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집중해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다.
종전 기록자인 정선민 전 감독 등 많은 이들이 경기장을 찾았었는데?
정선민 전 감독님을 비롯해서 위성우 감독님, 박정은 감독님, 변연하 코치님, 임영희 코치님 등 많은 분이 축하 메시지를 전해주셨다. 우승, MVP보다 가장 큰 자부심으로 다가오는 게 19살에 입단하자마자 기라성 같은 언니들과 함께 뛰었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축하를 받아 너무 감사했다.
구단에서 준비한 통산 최다 득점 행사를 마다했다고 들었는데?
좋아할 틈이 없었다. 경기력이 너무 좋지 않았다. 악몽과 같은 경기력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진 않았다. 통산 득점 1위 오르는 거 본다고 많은 분이 오셨는데 그랬다. 내가 인터뷰할 자격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속상했다. 그래서 국장님한테 이거 안 하면 안 되겠냐고 그랬었다. 팀이 잘 나가고 있는 게 아니고, 또 어린 선수들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오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원래 기록을 많이 의식하지 않는 편인지?
기록에 연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 통산 득점 1위는 약간 달랐던 게 있었다. 일단 주변에서 많이 바랬던 기록이다. 꼭 깨고 은퇴했으면 좋겠다고,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게 신경을 안 썼다. 의식하는 순간 더 멀어지는 게 기록이다. 그냥 순리대로 뛰어왔었던 것 같다.
최다 득점을 위해 달려온 날들을 돌아본다면?
매 순간 힘들었던 것 같다. 부상이 너무 많았다. 부상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은행에 있으면서 마지막에 발목 수술을 받았을 때 아 이제는 진짜 그만해야겠구나 생각했다. 이때가 정말 힘들었다. 하나은행에서 우리은행으로 이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능적으로 너무 떨어진 게 느껴졌다. 이제 진짜 끝났다라는 생각에 남몰래 정말 많이 울었다. 이렇게 한 해마다 진짜 마지막이겠구나 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은퇴하고 딱 하나 좋을 건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 이 하나는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많은 영향력을 준 감독님이 있다면?
먼저 기억나는 스승님은 안재근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스카우트해 주셨다. 클럽에서 농구를 시작했는데, 엘리트 팀과 맞불을 기회가 있었다. 이때 엘리트 팀에 2-50으로 진 기억이 있다. 2점이 내가 넣은 득점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내 손을 이렇게 보시더니 운동을 권유하셨다. 합숙 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우리 할머니가 정말 반대하셨는데, 선생님이 온양에서 청양까지 거리를 몇 달간 계속 오셨다. 결국 허락해 주셨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농구를 못 했을 거다. 프로 입단했을 때 처음 만난 정인교 감독님은 지금까지도 저한테 정말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 그리고 위성우 감독님. 농구선수로서, 사람으로서 가장 성장하게 해주셨다. 헤어질 때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또 하나의 힘, 남편은 어떤 존재인가?
럭비 선수 출신이라 수술을 10번이나 했다. 목부터 정말 안 아픈 곳이 없다. 오뚝이 같은 사람이다. 내가 나약해지는 순간에 남편이 멘탈적으로 잡아주는 부분이 컸다. 또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면 객관적으로 봐주기도 한다. 오랫동안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남편 덕이다. 인생에 대한 태도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심리적으로 많은 안정을 준다.
‘꼰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 분야에서 최고 자리까지 가려면 많은 걸 포기해야 해요. 진짜 간절해야 합니다. 프로선수라면 다 열심히는 할 거예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치열하고 절박해야 해요. 저는 지금도 농구가 안 되면 잠을 못 잘 만큼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 정도가 아니면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후배들이 훌륭한 선수로 성장해 지금 중고교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프로 생활을 하는 기반을 닦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정은이 통산 최다 득점 달성 후 남긴 말이다.
굉장히 인상 깊었다. 남기게 된 배경이 있다면?
최다 기록을 세운 후 다음 경기를 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여러 생각에 잠겼었다. 내가 (정)선민 언니의 기록을 깼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언니들과 같이 농구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농구할 수 있는 이유는 언니들이 길을 잘 닦아오신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렸을 땐 몰랐다. 이런 이야기 하면 후배들이 꼰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 때만 해도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책에서 봤는데 요즘은 열심히만 해도 살아남는 시대라고 하더라. 지금 여자 농구가 계속 위기라고 하지 않나. 우리 세대가 은퇴하면 밑 세대들이 잘 유지해야 한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잘 버텨서 내가 선배 언니들한테 받았던 영향을 그대로 받아 많은 것들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옛날 선수단 분위기는 어땠나?
정말 엄격했다. 그때 언니들도 지금의 나처럼 나 때는 말이야 하고 이랬던 기억이 있다(웃음).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 팀은 굉장히 가족처럼 지냈다. 프로 왔는데 갑자기 규율이 너무 강해 힘들었다. 이런 게 싫어 얼른 농구를 잘해서 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때 당시 멘토는 누가 있었는지?
어릴 때부터 대표팀을 갔었다 보니 훌륭한 언니들이 많았다. 박정은 감독님, 하은주 해설위원님, 최윤아 코치님, 정선민 전 감독님 등등. 이런 선배들이 하는 거 하나하나 유심히 보는 것도 큰 공부였다. 물어보기도 정말 많이 물어봤던 것 같다. 이상하게 그때는 다들 나이가 어렸음에도 모이면 농구에 관련된 철학적인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그러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 측면에서 해외에서 도전하고 있는 박지수, 박지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사실 대리 만족하고 있다(웃음).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나도 어렸을 때 WNBA 캠프라도 가보고 싶어서 정인교 감독님과 함께 1달간 시애틀로 연수를 떠난 적이 있다. 거기서 캠프에 도전해 보면 어떤지? 라는 관계자의 말도 있었는데, 그때부터 다치고 해서 가지 못했다. 나름 나도 그런 꿈이 있었다(웃음). 돈 주고도 하지 못할 경험이다. 정말 대견한 것 같다.
후배들에게 더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반복에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제일 힘들다. 1년 루틴이 항상 똑같다. 시즌 보내고 7~8개월간의 오프시즌을 버텨야 하고, 운동도 오전 오후 거의 비슷한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쳇바퀴처럼 계속 돌아가다 보면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농구는 결국 반복 운동인 것 같다. 이렇게 꾸준히 해야 경기장에서 자기 플레이가 나온다. 그렇기에 절대 반복에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하나은행 선수들에게도 항상 이야기한다(웃음).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이런 영향력을 받았다. 모든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고, 더 강해졌으면 정말 좋겠다. 견뎌내는 힘이 생겼으면 한다.
은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고, 지도자의 꿈은 있는지?
마음속으로 많이 준비하고 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농구는 희로애락 그 자체였다. 지겹고 아프고 힘들고 여러 감정을 다 느꼈다. 그래서 농구가 없는 인생이 아직 상상이 안 간다(웃음). 지도자 생각은 하고 있다. 가끔 벤치에서 코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다만,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농구였고, 또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경은, 배혜윤 등 아직도 활약 중인 베테랑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어릴 때부터 워낙 경기를 많이 했었고, 나이도 같이 들어가니까 그냥 경기 보면 나이 든 선수들이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 당연히 있다. 코트에서 경쟁자지만, 큰 틀로 봤을 때는 동업자다. (이)경은이는 워낙 절친이고, 부상도 많아 고생 많이 했다. 서로 의지도 하고 굉장히 가까운 사이다. 그런데 요즘 회춘했더라(웃음). 나도 기쁘다.
돌아본 선수 생활 중 아쉬움이 남는 순간은 없는지?
해외 무대 부딪혀 봤으면 하는 거 말고는 전혀 없다. 또 생각해 보자면 몸 관리? 몸이 안 만들어진 상태에서 경기를 뛰며 누적돼 부상이 많이 왔던 것 같다. 이런 거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다 견디고 여기까지 온 김정은의 마지막 목표가 있다면?
팀 성적 말고는 정말 없다. 이제는 내가 물러서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팀에 부상자가 워낙 많아 당장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래야 한다. 시즌 초 너무 많이 꼬였지만, 하나은행 농구가 끝난 건 아니다. 은퇴하는 날까지 모든 걸 쏟아부어서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조금이라도 더 힘이 됐으면 한다. 다 걸고 하나은행에 왔다. 끝까지 다 걸고 할 것이다.
#사진_문복주 기자,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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