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성적 내기 힘들어요. 3학년이 4명이에요.”
지난 1월, 전지훈련장에서 만난 A 고교 코치의 말입니다. 경험 많은 3학년이 4명이면 좋은 성적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입니다. 2학년에 기량 좋은 선수가 여러 명 있습니다. 그러나 뛸 기회가 적습니다. 3학년이 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B 고교는 3학년이 5명입니다. 3명은 장점이 뚜렷한 선수들입니다. 2명은 경쟁력에 물음표가 붙습니다. B 고교 코치 역시 올해보다 내년, 내후년을 더 기대합니다. 3명의 장점보다 2명의 물음표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저학년에 기대하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학 입시가 이유입니다. 현행 체육특기자 제도는 출전 시간, 득점, 리바운드 등 ‘경기실적’이라 부르는 정량적 평가가 당락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러니 3학년들의 기록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정상적인 경기 과정에서 기록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을 올릴 수 있게 출전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때로 입시 결과는 지도자 거취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 농구, 대학 입시를 위한 도구?
지난해 4월, ‘현장에서 토로하는 체육특기자 제도(이하 ‘제도’)의 문제점’이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이후 아마추어 농구 커뮤니티에서 ‘제도’에 대한 의견을 구했습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공을 들고 있을 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 농구하도록 허락”했다는 한 학부모는 “한국의 고등 농구는 대학 입시를 위한 도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아이에게 “행복하려고 시작한 농구이니 즐겨라”라고 했지만, 자신도 (아이에게) 부담을 주고 지도자에게 불만을 품는 모습에 “중심을 잡자고 다짐하고 다짐해야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어 “지금 고등 농구는 아이들이 농구를 즐길 수 있는 장이 절대로 아닙니다. 미국과 일본처럼 수많은 아이들이 varsity(대표팀)와 junior varsity(2군) 팀에서 진정으로 농구를 즐기며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실력으로 인정받은 아이들이 농구선수로 자연스럽게 코트를 밟고, 대학을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체육특기자 제도의 문제가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요?”라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반면 “선수 이전에 공부하는 학생 신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중략) 이번에 고등학교 농구 일정을 보면 해남과 영광에서 개최된 대회의 4강권 고교 선수들의 경우 거의 한 달간 정상 수업 진행이 어려웠을 겁니다. 이런 점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야구나 축구처럼 주말리그가 활성화 됐으면 합니다”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대학이 선수 선발을 늘려야 한다, 야구나 축구의 운동 전문 특성화 학교 모델이 농구도 있었으면 좋겠다, 학년별 대회로 바뀌면 좋겠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특히 중고등학교 학부모들은 이 사안에 관심이 컸습니다.
▲ 가드만 7명 선발?
C 대학은 7명의 신입생이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신장이 190센티를 넘는 선수가 없습니다. 센터 포지션에서 합격한 선수도 가드의 신장입니다.
C 대학은 전통적으로 빅맨 육성을 잘해 ‘센터 사관학교’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25학번은 육성할 빅맨이 없습니다. 가드만 7명입니다. 그중 5명은 180센티 내외의 신장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이지 않은 사례가 빈번합니다. U18 아시아컵 MVP도, 3년 동안 팀을 14번 정상에 올렸던 최고의 슈터도 합격 통지를 못 받는 것이 한국 농구의 체육특기자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경기실적의 항목별 비중은 대학의 권한입니다.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누구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기록을 만들어 놓고 결과를 기다려야 합니다.
농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패스를 잘하는 선수, 득점을 잘하는 선수, 수비와 궂은일을 잘하는 선수가 함께 뛰어야 합니다. 나보다 더 좋은 위치의 동료에게 기회를 양보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제도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고교농구 기록지에 표시되는 수비의 정량 지표는 스틸, 굿디펜스, 블록슛이 전부입니다. 박스아웃과 스크린, 디플렉션 등 팀 농구에 꼭 필요한 플레이는 경기실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학 감독들이 신입생을 받으며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수비를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농구는 축구와 달리 공격수와 수비수가 없습니다. 수비를 처음부터 다시 가르친다는 것은 농구의 절반을 처음부터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말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제도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저변의 문제도 있습니다. 코칭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등학교 선수들의 1차 목표가 대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도의 보완은 필수입니다.
▲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게 해주는 ‘팀워크’
2023년과 2024년, 출중한 새내기들의 합류는 대학농구의 관심을 높였습니다. 고려대 문유현, 연세대 김승우 등은 당장 프로에서도 통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문유현은 고등학교 때까지 포워드에 가까운 플레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단기간에 국가대표 가드로 성장했습니다. 때로 어린 선수들은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여줍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기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농구는 중요한 고등학교 시기에 성장의 방향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팀워크는 필수적입니다. 그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게 해줍니다."
한국 축구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거스 히딩크의 말입니다. 팀 스포츠에서 팀워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히딩크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선수가 가장 싫다는 말도 했습니다.
해보려는 의지에 팀의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더하면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성실하게 훈련한 선수,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에게 더 많은 출전 기회가 돌아가야 합니다. 그 선수들이 경기를 통해 성장해야 합니다. 진학을 위한 선수 기용은 선수에게도, 한국 농구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입시 요강은 소속팀 감독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합니다. 팀 운영의 전략과 방향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요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그 요강을 토대로 리쿠르팅해야 합니다.
경기실적에는 필드골 성공률 등 공격의 효율성을 확인하는 지표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수비 공헌도를 높은 비중으로 반영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수 균형 잡힌 선수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야 대학농구의 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KBL과 대표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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