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유석주 인터넷기자] 유기적인 농구를 되찾은 SK는 무서움 그 자체였다.
서울 SK는 25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수원 KT와의 2024-2025 KCC 프로농구 4강 2차전에서 86-70으로 승리했다.
SK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난 경기였다. KT는 2쿼터까지 13점을 터뜨린 레이션 해먼즈의 득점력을 앞세워 전반전을 40-40 동점으로 마쳤다. 해당 구간 허훈이 5점 야투율 22%로 부진했음에도 SK는 낮은 3점슛 성공률(21.4%, 3개)에 발목 잡히며 라커룸으로 향했다.
승부는 3쿼터부터 달라졌다. SK는 후반에 속공 득점을 단 1점도 만들지 못했지만, 선수단 전체의 유기적인 볼 흐름이 살아나며 허훈이 무득점으로 침묵한 KT를 공격으로 압도했다. KT 역시 갖은 방법을 동원해 추격하려 했으나, 상대의 득점 흐름을 제어하지 못하며 끝내 4쿼터 막판 백기를 들었다.
다소 승기가 일찍 기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차전의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한 서로의 철저한 준비만큼은 코트 안에서 반짝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두 팀이 연출한 같은 장면에서 각자의 다른 의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과연 그 전술적 배경과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에이스에게 휴식을! 빅맨간의 연계가 주는 변칙성과 효과
KT 송영진 감독은 사전 인터뷰부터 해먼즈 득점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며 ‘빅투빅’ 활용을 예고했다. 빅투빅이란 가드와 빅맨이 아닌 빅맨 두 명이 서로 연계하는 공격을 뜻하며, 주로 다재다능한 빅맨이 가드의 역할을 대신한다. 사실 KT엔 그리 낯선 전술이 아니었다. 지난 시즌 패리스 배스를 핸들러로 기용하는 하윤기와의 빅투빅을 종종 선보인 바 있다.
빅투빅을 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당연히 빅맨의 득점 볼륨을 키우기 위함도 있지만, 경기 운영과 공격을 책임지는 빅맨이 아닌 포지션의 선수에게 여유를 선물할 수도 있다. KT의 경우 플레이오프 평균 35분씩 코트를 밟는 허훈의 부담을 더는 게 절실했다. 즉 해먼즈의 득점 볼륨만 필요한 게 아니라 에이스가 공격에 전부 가담하지 않아도 원활한 득점을 생산할 수 있는 과정 자체가 요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해먼즈가 벤치에 있을 때도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아래 화면을 보자.
2쿼터 동점 상황. 리바운드를 잡은 허훈이 빠르게 코트를 넘어왔지만, SK 역시 재빨리 수비 대형을 선점한 탓에 속공 전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때 박준영이 허훈을 위해 스크린을 걸어줬고, 허훈은 조던 모건에게 바운드 패스를 집어넣었다.
허훈 방면 득점을 견제하기 위해 두 명의 수비수가 붙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앞이 열려있음을 인지한 박준영은 망설임 없이 페인트존으로 컷인을 시도했다. 모건 역시 지체하지 않고 공을 건네줬다.
그대로 두면 쉬운 득점을 허용하는 상황.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수비가 모였고, 박준영은 오른쪽에 있는 문정현에게 활짝 열린 코너 3점슛을 선물했다. 허훈의 그래비티(gravity)를 활용한 나머지 선수들의 간결하고 깔끔한 공격 전개였다. 적장의 의도가 그대로 적중한 득점에 SK는 작전 타임으로 흐름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이기적이지 말 것! 이타심이 농구에서 중요한 이유
1차전이 끝난 뒤, SK 전희철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기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가겠다. 농구는 동료가 없으면 혼자 잘해도 이길 수 없다”라며 선수단 전체에 이타적인 농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SK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김선형마저 “모두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라며 서로를 위하지 않는 팀의 모습에 쓴소리를 뱉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날 경기에선 SK의 아주 사소한 부분조차도 동료를 위한 움직임이 묻어 나왔다. 아래 화면을 보자.
SK의 속공 상황. 4초 만에 건너온 뒤 최원혁이 공을 잡았지만, 자신의 동선에 KT 선수들이 많았기에 반대편의 오세근에게 패스를 뿌렸다. 오세근은 뒤따라오던 김선형에게 다시 공을 건넸다. 이때 코너에 있던 안영준이 3점슛을 위해 45도로 올라온다.
이를 인지한 최원혁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지만, 점수가 앞선 상황에 김선형은 속공 대신 자밀 워니와의 투맨 게임을 시도했다. 안영준 입장에선 첫 번째 쉬운 득점 기회가 무산된 셈이다.
하지만 곧바로 공간을 벌려 다시 코너에 자리를 잡는 안영준. 김선형이 드리블로 수비를 제치자 최원혁은 동료를 위해 스크린을 걸어줬고, 이번엔 손짓을 놓치지 않은 김선형이 어시스트를 전달하며 드디어 안영준의 코너 3점슛을 완성했다. 서로가 동료의 기회를 위했던, 모두가 이타적으로 선택한 값진 결과물이다.
같은 장면 속 녹아있는 서로 다른 두 팀의 땀방울. 그만큼 모두가 2차전 승리에 사활을 걸었지만, 선수단 전체의 유기적인 득점이 빛난 SK가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과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KT가 이 시리즈를 더 이어갈 수 있을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3차전은 오는 27일 수원 KT 소닉붐 아레나에서 펼쳐진다.
#사진_유용우 기자, tvN SPORTS 중계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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