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부임 후 3개월이 흘렀습니다. 분주히 시간을 보내셨을 것 같아요.
2월 1일 정식 등록되며 임기가 시작됐지만, 인수인계 과정까지 포함하면 더 오랫동안 업무를 맡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 시즌 경기력, 관중 동원 등을 돌아보며 여자농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WKBL의 수장은 총재님이지만, 사무총장은 코치라고 생각해요. 중추적인 역할이다 보니 책임감이 막중합니다. 생각보다 더 바쁘고 힘드네요(웃음). 일을 마친 후에도 ‘잘 진행되고 있나? 잘한 결정이겠지?’ 등등 고민도 많이 생기더라고요. 끊임없이 담당자들과 회의하고, 결재하고, 농구는 농구대로 봐야 하고…. 쉬는 날도 내일 할 일을 구상하느라 온전히 쉬지 못해요. 그래도 바쁜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쉴 때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사무총장을 제안받은 시점은?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안덕수 캠프를 진행할 때였어요. 김용두 전 사무총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제안이라기보단 총재님께 보고할 후보 가운데 1명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말씀만이라도 감사드린다고 했죠. 귀국 후 박신자컵 기간에 사무총장님과 만났고, 총재님은 대회가 끝난 후 처음 뵈었어요. 이후 한 달 정도 지나서 내정이 됐습니다.
사무총장 역할을 수락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여자농구로부터 받은 게 많았고 감사한 마음도 컸어요. 한국에서 지도자를 할 수 있게 해준 곳도 WKBL, KB스타즈였죠. 언젠가 또 지도자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능력이 된다면 다른 일을 통해서라도 여자농구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일본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일본 여자농구가 급성장한 배경, 한국보다 나은 부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거든요. (임기가)3년이 될지, 6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떠나기 전까지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저는 직설적인 편이지만, 무슨 일이든 주위 사람들의 조언도 잘 듣는 편입니다. 사무총장을 맡는 동안에도 많은 분들의 얘기를 경청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요. 물론 부딪칠 때도, 질타를 받을 때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부분을 두려워한 적은 없어요. 총재님도 신한은행장 시절부터 여자농구에 애정을 쏟은 분이신 만큼, 밑에서 배울 점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농구연맹 사무국장으로 행정 업무를 맡았던 경험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요.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7년이라는 시간이 제 인생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훌륭한 감독님, 코치님들도 있지만 결국 농구가 발전하려면 각 연맹 사무국의 행정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농구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도 있었고요. 제 이력서에 그 한 줄이 있었던 것도 총재님이 저를 눈여겨본 요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해설위원으로 본 WKBL은 어땠나요?
감독할 때는 아무래도 우리 팀, 제 선수만 봤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앞만 본 거죠. 해설위원을 맡으니 6개 팀에 대해 더 세밀하게 살펴보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독님들의 성향, 선수들과의 호흡이 더 잘 보이더라고요. 이 선수가 오프시즌에 어떤 노력을 했는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만약 지도자를 다시 하게 된다면, 이전에 보냈던 6년이라는 시간을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감독할 때보다 마음 편하게 농구를 볼 수 있더라고요(웃음).
시청률, 관중 동원 등도 신경 쓰였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시청률을 아예 생각하지 않을 순 없죠. 경기를 분석하는 것 외에도 시청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중계를 즐길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관중석의 빈자리를 보며 선수들이 공을 따내기 위해 몸을 더 던지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줬으면 하는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결국 선수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팬 서비스는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물론 경기 끝나면 하이파이브도 열심히 해야 하고요. 열심히 하지 않아서 팬들의 외면을 받는 게 제일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용두 전 사무총장님이 미디어 쪽에 힘을 실어주셨고, 박신자컵이 국제대회로 격상하는 데에도 많은 역할을 하셨어요. 좋은 부분은 이어가야죠. 일단 박신자컵, 퓨처스리그의 수준이 더 높아질 수 있도록 이끌고 싶습니다. 외국선수들과의 대결을 통해 선수들 스스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깨달으며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프시즌에는 재능기부를 통해 어린이들의 성장도 이끌고 싶습니다. 단순히 흥미만 줘선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칭찬만 해선 성장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스킬 트레이닝을 받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꼬집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유소년 농구 문화도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경기 끝나면 우리 아이 빨리 밥 먹여야지’ 하면서 그냥 가잖아요. 일본은 대회가 끝나면 참가한 선수들 모두 청소하고, 웃으면서 헤어집니다. 체육관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것도 습관화됐죠. 다 같이 남아서 의자 정리하고, 청소하는 분들도 도와줘요. 저는 그런 사소한 부분이 모여 협동심을 만들고, 그게 곧 조직력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패한 팀들도 순위결정전을 치르는데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기를 더 치러서 비용 문제가 생긴다면 더 움직여서 비용을 확보하는 게 제가 해야 할 임무죠.
경기력 저하, 득점 가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판정과 관련된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쉬운 골밑슛을 놓치는 상황이 너무 많아요. 선수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체력적인 부분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경기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 보니 선수들의 집중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차기 시즌에는 더욱 탄력적으로 일정을 짤 계획입니다. 화요일 외에 평일 휴식일을 늘리는 대신 공휴일에 2경기를 치르는 것을 검토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이른바 ‘퐁당퐁당 일정’도 줄어들 테고, 선수들의 체력 부담도 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분명한 건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선수들 스스로 이겨내야 해요.
공휴일 2경기로 기대되는 효과가 있다면?
일요일 경기를 오후 4시로 바꾼 게 시청률과 관중 동원에 큰 영향을 끼쳤고, 여기서 힌트를 얻어 공휴일 2경기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방송사와 풀어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해결되면 관중도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직장인 입장에서 평일에 보러 가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경기가 끝난 후 늦게 집에 들어가면 다음날 컨디션에도 지장을 받잖아요. 팬들 입장에서도 주말 2경기를 반길 거라 생각합니다.
유소년 농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듯 칭찬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좋지만, 한편으로 루즈한 면도 있어요. 아이들이라 해도 트래블링, 바이얼레이션 같은 건 정확히 짚어줘야죠. 그러면서 경쟁심도 생기는 거고요. 프로선수들이 뛰는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치르며 꿈을 키울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외국 팀과의 친선대회도 많이 추진하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허들을 하나씩 넘어간다는 마음으로 추진해 보려고요. 조금씩 몸집을 키워가서 1명이라도 더 농구를 시작하게 하고, 1명이라도 농구를 덜 그만두게 하는 게 연맹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아시아쿼터제도가 각 팀에 도움이 됐지만, 보안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는 일본에 국한됐지만, KBL처럼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사무국 회의에서도 얘기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유계약으로 이뤄져야 하고요. 그래야 팀들도 발품을 팔아서 더 훌륭하고, 팀에 어울리는 선수를 영입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센터가 필요한 팀은 신체 조건이 좋은 카자흐스탄 선수를 물색할 수도 있고, 가드가 필요한 팀이라면 일본 선수들을 더 면밀하게 살펴보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적인 제약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할 문제입니다.
아직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총재님이 밝힌 공약 가운데 하나잖아요. 총재님이 쉴 틈 없이 분주히 노력하고 계십니다. 잘될 것 같아요. 만약 7구단이 창단한다면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도 많아지고,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외국선수 제도 부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외국선수가 없는 리그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픈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외국선수 때문에 국내선수가 뛸 자리가 없다는 얘기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외국선수 제도가 사라진 후 국내선수들이 성장했나요? 경기가 더 재밌어졌나요? 아니면 국제 경쟁력이 높아졌나요? 오히려 자식에게 농구를 시키려는 부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죠. 저는 리그가 발전하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외국선수 제도가 부활해야 한다고 봅니다. 외국선수 때문에 뛸 자리가 없다는 건 핑계죠. 선수들이 더 노력해야 합니다. 경쟁을 피하거나 무서워하는 건 선수의 자세가 아니죠.
올해 박신자컵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차기 시즌 타이틀 스폰서가 BNK이기 때문에 부산에서 열리고요. W리그에서는 후지쯔, 덴소가 각각 우승, 준우승을 해서 참가가 확정됐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팀을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스페인 팀도 참가하고요. 헝가리 팀과도 접촉했습니다. 이 팀이 어렵다면 세르비아 팀이 출전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신자컵에 앞서 유소년 국제대회도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에요. 마침 전국체전도 부산에서 열려서 유소년 국제대회 역시 시설 점검 차원에서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장 다음 시즌 WKBL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경기력, 특히 득점력이 올라가야죠. 개인적으로는 벤치멤버들이 더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나이 많은 선수들이 주전으로 뛰고 있잖아요. 선수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겠지만, 지난 시즌은 안타까운 부분이 많이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송윤하 같은 신인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멀리 내다봤을 때 WKBL의 목표는?
7구단을 넘어 8구단까지 생겼으면 해요. 결국 저변이 확대돼야 농구하는 인구가 늘고, 그래야 국제 경쟁력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습니다. 팬들이 많이 찾아올 수 있도록 재미있는 리그를 만들겠습니다.
김정은이 은퇴 시즌을 예고했습니다. 연맹 차원에서 기획 중인 마케팅도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김연경이 은퇴 투어를 했듯, 특별한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은퇴 투어를 기획하겠다는 건 아니고 여러 방면에서 고심하고 있어요. 구단에게만 맡기면 안 되고 연맹도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에요. 연맹도 일찌감치 논의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처럼 훌륭한 선수의 마지막 시즌을 빛내줘야 향후 김단비 같은 선수들도 더 멋있게 은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WKBL 팬들에게 한마디를 남긴다면?
팬들이 있어야 농구도 존재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감독 시절 팬들의 성원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선수들에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못할 땐 질타도 받겠지만, 선수들은 이를 자양분으로 삼았으면 해요. 물론 연맹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의견이든 겸허히 받아들이며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리그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974년 3월 15일생으로 매산초-삼일중을 거쳐 일본으로 농구 유학을 다녀왔다. 오사카 하츠시바고-규슈산업대 졸업 후 삼성에 입단했고, 샹송화장품 V-매직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농구연맹 사무국장으로 행정 업무도 경험했고,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청주 KB스타즈 감독을 맡았다. 2018~2019시즌에는 팀 역사상 첫 통합우승을 안겼다. KB스타즈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KBS N SPORTS 해설위원으로 시청자들과 호흡했다.
#사진_문복주 기자,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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